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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부스타vs아리비카 베트남 커피 품종 이야기

by i237tour 2025. 10. 23.

베트남은 단순히 커피 생산량으로 세계 2위를 기록하는 나라를 넘어, 독자적인 커피문화를 구축한 국가다. 그 중심에는 ‘로부스타(Robusta)’와 ‘아라비카(Arabica)’라는 두 커피 품종이 있다. 두 품종은 서로 다른 성격과 풍미, 재배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이 차이가 베트남 커피산업의 발전 방향을 결정지었다. 로부스타는 베트남 경제를 이끈 견고한 산업 기반을 제공했고, 아라비카는 품질과 향미를 중시하는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본 글에서는 베트남이 어떻게 두 품종을 통해 독창적인 커피 문화를 형성했는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역사적·경제적 의미를 자세히 살펴본다.

커피 글라인더와 커피
커피 글라인더와 커피

로부스타 커피와 베트남 산업의 성장

로부스타 커피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식민지 시기에 베트남에 전해졌다. 프랑스는 자국 내 커피 소비량을 충족시키기 위해 열대 지역에서 대규모 커피농장을 조성했고, 병충해에 강하고 생산성이 높은 로부스타 품종이 베트남의 기후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중부 고원지대인 부온마투엇(Buon Ma Thuot) 지역은 풍부한 강수량과 비옥한 토양 덕분에 로부스타 재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1950~1970년대에는 농업 개발 정책과 수출 확대 전략을 통해 로부스타 생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베트남 전쟁 이후 황폐해진 농지를 복구하는 과정에서도 커피는 경제 재건의 핵심 산업으로 선택되었다. 1986년 ‘도이머이(Doi Moi)’ 정책 이후, 베트남은 개방경제 체제를 도입하며 커피 수출에 집중했다. 그 결과, 1990년대 후반에는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 커피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로부스타 커피는 높은 카페인 함량과 강한 쓴맛, 묵직한 바디감이 특징이다. 이러한 풍미는 서양식 에스프레소나 인스턴트 커피에 적합해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수요를 유지했다. 베트남 현지에서도 로부스타의 강렬함은 독특한 커피문화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예가 ‘카페 쓰어다(Cà phê sữa đá)’, 즉 연유를 넣은 아이스커피다. 진한 로부스타 커피에 달콤한 연유를 더해 만든 이 음료는, 베트남 특유의 여유로운 거리 문화와 함께 세계인들에게 베트남 커피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로부스타는 단순한 경제작물이 아니라 베트남의 근현대사를 견인한 동력이었다. 커피 농가의 소득 증대는 교육, 인프라, 지역 경제 발전으로 이어졌고, 오늘날 베트남 중부의 고원도시는 ‘커피의 수도’로 불릴 정도로 성장했다.

아라비카 커피의 품질, 도전, 그리고 새로운 흐름

아라비카 커피는 부드럽고 산미가 있으며 향이 풍부하다. 그러나 이 품종은 서늘한 기후와 고도가 필요한 까다로운 작물로, 베트남 대부분 지역의 고온다습한 기후에서는 재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랏(Da Lat), 손라(Son La), 꽝찌(Quang Tri) 등 일부 고원 지역에서는 아라비카 재배가 가능했다. 2000년대 들어 베트남 정부는 로부스타 중심의 단일 구조에서 벗어나 품질 중심의 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아라비카 고급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정부는 농부들에게 고지대 재배기술, 병충해 관리, 지속 가능한 농법을 지원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또한 국제 원두 브랜드와 협력하여 스페셜티(Specialty) 커피 시장에 진입하려는 시도도 활발해졌다. 달랏 지역의 아라비카 커피는 과일향, 꽃향, 은은한 산미가 조화로운 것이 특징이다. 현지 농부들은 수확 후 세심한 가공과정을 거쳐 품질을 높였고, 이러한 노력은 국제 커피박람회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최근 몇 년간 ‘100% 베트남산 아라비카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이 등장하면서, 베트남은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가치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아라비카 재배는 단순히 새로운 품종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농업과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젊은 세대 농부들은 커피를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문화 콘텐츠’로 인식하며, 자체 로스팅 브랜드를 운영하거나 커피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관광산업과 연결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베트남 커피산업이 더 이상 저가 수출 중심이 아닌, 고품질·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 중임을 보여준다.

로부스타와 아라비카의 공존 — 베트남 커피의 현재와 미래

오늘날 베트남의 커피 산업은 두 품종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독창적인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로부스타는 여전히 전체 생산량의 약 90%를 차지하며 국가 경제를 지탱하고 있고, 아라비카는 소량 생산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지 유명 커피 브랜드인 ‘하이랜드 커피(Highlands Coffee)’, ‘콩카페(Cộng Cà Phê)’, ‘더 커피하우스(The Coffee House)’ 등은 로부스타와 아라비카를 혼합한 블렌딩 제품을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다양한 입맛을 만족시키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카페 브랜드를 넘어, 베트남 커피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도 ‘2030 커피 비전’을 수립해 아라비카 재배 면적 확대, 환경친화적 농법 도입, 수출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커피산업의 디지털화와 스마트팜 기술 도입으로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향상시키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베트남 커피의 미래는 두 품종의 경쟁이 아닌 공존과 균형에 있다. 로부스타는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대량 생산의 강점을 유지하고, 아라비카는 브랜드 가치와 미식적 매력을 더한다. 이 두 축이 만나는 지점에서 베트남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커피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베트남 커피의 이야기는 단순히 로부스타와 아라비카의 품종 비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경제와 문화, 역사와 사람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거대한 여정이다. 로부스타는 산업의 성장과 서민의 삶을 지탱한 실용적 품종이었고, 아라비카는 예술성과 감성을 더한 새로운 미래의 씨앗이다. 이제 베트남은 두 품종이 어우러진 다채로운 커피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며, ‘양에서 질로’의 진정한 도약을 이뤄가고 있다. 한 잔의 베트남 커피를 마실 때 우리는 단순한 맛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노력, 그리고 문화의 향기를 함께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